+ Christmas Novena 성탄9일기도 (12월 16일 또는 17일 시작)
Christmas Novena
Hail, and blessed be the hour and moment
At which the Son of God was born
Of a most pure Virgin
At a stable at midnight in Bethlehem
In the piercing cold
At that hour vouchsafe, I beseech Thee,
To hear my prayers and grant my desires
(mention request here).
Through Jesus Christ and His most Blessed Mother.
성탄9일기도 (12월 16일 또는 17일 시작)
<베들레헴을 향하여>
-베들레헴-
첫째 날 12월16일 : 예루살렘 성전 (마태 21, 9-13)
그리고 앞서 가는 군중과 뒤따라가는 군중이 외쳤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성이 술렁거리며, “저분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그러자 군중이“저분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 (마태21,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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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탄 신비의 묵상을 시작하며
예수 생애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던 성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선택합니다.
태초에 하느님은 인간을 조화와 순결로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자 했고,
그리스도께서는 역사 안으로
인간을 찾아 오셨지만 인간은 숨어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전은
하느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곳으로 창조되었지만,
인간은 이 곳을 가난한 이들을 속여서
부당이익을 취하는 상거래의 장소로 변질시켰습니다.
결국 성전은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의 착취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이 장소의 성스러움을 재인식하고,
하느님께 공간을 내어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느님께 공간을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면서
그의 말씀을 경청하고 생활화 하는 것이며,
그 분이 나를 보실 수 있게 자주 그 분을 찾는 것입니다.
Day One
God's Love Revealed In His Becoming Man.
Thought:
Because our first parent Adam had rebelled against God, he was driven out of paradise and brought on himself and all his descendants the punishment of eternal death. But the son of God, seeing man thus lost and wishing to save him from death, offered to take upon Himself our human nature and to suffer death Himself, condemned as a criminal on a cross.
"But, My Son," we may imagine the eternal Father saying to Him, "think of what a life of humiliations and sufferings Thou wilt have to lead on earth.Thou wilt have to be born in a cold stable and laid in a manger, the feeding trough of beasts.
While still an infant, Thou wilt have to flee into Egypt, to escape the hands of Herod. After Thy return from Egypt, Thou wilt have to live and work in a shop as a lowly servant, poor and despised. And finally, worn out with sufferings, Thou wilt have to give up Thy life on a cross, put to shame and abandoned by everyone." "Father," replies the Son, "all this matters not. I will gladly bear it all, if only I can save man."
What should we say if a prince, out of compassion for a dead worm, were to choose to become a worm himself and give his own life blood in order to restore the worm to life? But the eternal Word has done infinitely more than this for us. Though He is the sovereign Lord of the world, He chose to become like us, who are immeasurably more beneath Him than a worm is beneath a prince, and He was willing to die for us, in order to win back for us the life of divine grace that we had lost by sin.
When He saw that all the other gifts which He had bestowed on us were not sufficient to induce us to pray His love with love, He became man Himself and gave Himself all to us.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He loved us and delivered Himself up for us."
Prayer:
O Great Son of God, Thou hast become man in order to make Thyself loved by men. But where is the love that men give Thee in return? Thou hast given Thy life blood to save our souls. Why then are we so unappreciative that, instead of repaying Thee with love, we spurn Thee with ingratitude? And I, Lord, I myself more than others have thus ill treated Thee.
But Thy Passion is my hope. For the sake of that love which led Thee to take upon Thyself human nature and to die for me on the cross, forgive me all the offenses I have committed against Thee.
I love Thee, O Word Incarnate; I love Thee, O infinite goodness. Out of love for Thee, that I could die of grief for these offenses. Give me, O Jesus, Thy love. Let me no longer live in ungrateful forgetfulness of the love Thou bearest me. I wish to love Thee always. Grant that I may always preserve in this holy desire.
O Mary, Mother of God and my Mother, pray for me that thy Son may give me the grace to love Him always, unto death.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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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9일기도(17일)
첫째 날 12월17일 : 헤로데 (마태 2,1-3. 7-9.16) - 예수 그리스도의 힘
예수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 힘의 전혀 다른 의미를 보여줍니다.
헤로데는 아기와 같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세례자 요한이 그를 책망하듯 그들의 약함으로 그의 악함을 고발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는 죄인, 병자, 가난한 이들을 찾으려 스스로 그들에게 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은 용서입니다.
우리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드러나는 용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확연히 드러난 용서입니다.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그 분이 가장 먼저 생각하신 것은
죄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방탕한 아들을 인내롭게 기다려주고,
그를 껴안아 주심으로 사랑과 선함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힘을 증언합니다.
용서는 또한 교회 안에서 화해의 성사를 통해 표현되어지고,
구원된 이의 자유로움으로 표현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체성사는 용서의 기도가 됩니다.
용서는 힘의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힘은 기쁨의 태도이고,
어떤 것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며,
우리를 성덕에로 직접 다다르게 하는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닌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방법으로,
그 분의 고요하고 신뢰깊은 친밀감으로 인간에게 다가가길 원하셨습니다.
누가 임신한 젊은 여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누가 미소 짓는 무죄한 아기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누가 병자와 걸인들을 돌보고 죄인에 대해 용서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결국 누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다만 죄인들을 용서하길 거부하고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구원을 거절하는 사람만이 예수께 두려움을 갖기 마련입니다.
* 묵상요점 ; 내 안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헤로데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성체 앞에 고요히 머물며 내가 지닌 두려움을 모두 떨쳐 버리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묵상해 봅시다.
Second Day
God's Love Revealed In His Being Born An Infant.
Thought:
When the Son of God became man for our sake, He could have come on earth as an adult man from the first moment of of His human existence, as Adam did when he was created. But since the sight of little children draws us with an especial attraction to love them, Jesus chose to make His first appearance on earth as a little infant, and indeed as the poorest and most pitiful infant that was ever born. "God wished to be born as a little babe," wrote Saint Peter Chrysologus, "in order that He might teach us to love and not to fear Him." The prophet Isaias had long before foretold that the Son of God was to be born as an infant and thus give Himself to us on account of the love He bore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to us."
My Jesus, supreme and true God! What has drawn Thee from heaven to be born in a cold stable, if not the love which Thou bearest us men? What has allured Thee from the bosom of Thy Father, to place Thee in a hard manger? What has brought Thee from Thy throne above the stars, to lay Thee down on a little straw? What has led Thee from the midst of the nine choirs of angels, to set Thee between two animals? Thou, who inflamest the seraphim with holy fire, art now shivering with cold in this stable! Thou, who settest the stars in the sky in motion, canst not now move unless others carry Thee in their arms! Thou, who givest men and beasts their food, has need now a little milk to sustain Thy life! Thou, who art the joy of heaven, dost now whimper and cry in suffering! Tell me, who has reduced Thee to such misery? "Love has done it," says Saint Bernard. The love which Thou bearest us men has brought all this on Thee.
Prayer:
O Dearest Infant! Tell me, what hast Thou come on earth to do? Tell me, whom art Thou seeking? Yes, I already know. Thou has come to die for me, in order to save me from hell. Thou hast come to seek me, the lost sheep, so that, instead of fleeing from Thee any more, I may rest in Thy loving arms.
Ah my Jesus, my treasure, my life, my love and my all! Whom will I love, if not Thee? Where can I find a father, a friend, a spouse more loving and lovable than Thou art? I love Thee, my dear God; I love Thee, my only good. I regret the many years when I have not loved Thee, but rather spurned and offended Thee.
Forgive me, O my beloved Redeemer; for I am sorry that I have thus treated Thee, and I regret it with all my heart. Pardon me, and give me the grace never more to withdraw from Thee, but constantly to love Thee in all the years that still lie before me in this life. My love, I give myself entirely to Thee; accept me, and do not reject me as I deserve.
O Mary, thou art my advocate. By thy prayers thou dost obtain whatever thou wilt from thy Son. Pray Him then to forgive me, and to grant me holy perseverance until death.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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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12월 18일 : 동방박사들(마태 2,1-2. 7-12) - 순례자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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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의 선택은 단순한 과학적,
역사적, 이성적인 작용 이었다기 보다는,
그 보다 더 높은 그 무엇에 의한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진리를 추구이며 직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따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신앙입니다.
비록 그들은 길의 안전함을 알지 못했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별과 하늘과 하느님의 지시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았고 믿고 나아 갔으며,
인간의 예측을 넘어선 신비에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왕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더 크고 신비로운 하늘의 “표징”을 찾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원을 추구하는 순례자가 되었고
이것은 인간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순례는 모든 문화안에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나 베델을 향하여 나아갔고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성지를 순례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렇듯 순례자입니다.
순례는 자신의 안전을 남겨놓고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그리스도의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순례 안에는 금욕과 극기, 화해가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깨어있음이,
용기를 잃지 않고 지나간 과거속의 무기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깨어있음이 있습니다.
순례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최상의 선과 온전한 인간을 찾으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례는 모든 확실함과 안전함을 뒤로한 채,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며
여행의 어려움과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극복하고 순례의 고독 속에서 견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하느님의 확실성입니다.
* 묵상요점 : 끊임없이 다가오는 삶의 도전 속에서, 나는 안일함과 무기력 내 자신
에게서 벗어서 어떤 별빛을 따라 걷고 있습니까?
Third Day
The Life Of Poverty Which Jesus Led From His Birth.
Thought:
God so ordained that, at the time when His Son was to be born on this earth, the Roman emperor should issue a decree ordering everyone to go to the place of his origin and there be registered in the census. Thus it came about that, in obedience to this decree, Joseph went to Bethlehem together with his virgin wife when she was soon to have her Child.
Finding no lodging either in the poor inn or in the other houses of the town, they were forced to spend the night in a cave that was used as a stable for animals, and it was here that Mary gave birth to the King of heaven. If Jesus had been born in Nazareth, He would also, it is true, have been born in poverty; but there He would at least have had a dry room, a little fire, warm clothes and a more comfortable cradle. Yet He chose to be born in this cold, damp cave, and to have a manger for a cradle, with prickly straw for a mattress, in order that He might suffer for us.
Let us enter in spirit into this cave of Bethlehem, but let us enter in a spirit of lively faith. If we go there without faith, we shall see nothing but a poor infant, and the sight of this lovely child shivering and crying on his rough bed of straw may indeed move us to pity. But if we enter with faith and consider that this Babe is the very Son, God, who for love of us has come down on earth and suffers so much to pay the penalty for our sins, how can we help thanking and loving Him in return?
Prayer:
O Dear Infant Jesus, how could I be so ungrateful and offend Thee so often, if I realized how much Thou hast suffered for me? But these tears which Thou sheddest, this poverty which Thou embracest for love of me, make me hope for the pardon of all the offenses I have committed against Thee.
My Jesus, I am sorry for having so often turned my back on Thee. But now I love Thee above all else. "My God and my all!"
From now on Thou, O my God, shalt be my only treasure and my only good. With Saint Ignatius of Loyola I will say to Thee, "Give me the grace to love Thee; that is enough for me." I long for nothing else; I want nothing else. Thou alone art enough for me, my Jesus, my life, my love.
O Mary, my Mother, obtain for me the grace that I may always love Jesus and always be loved by Him.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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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12월 19일 : 베들레헴 (미가 5,1-4)
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그가 땅 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아시리아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와서 우리 땅을 밟으면 우리는 그들을 거슬러일곱 목자와 여덟 제후를 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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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실현을 위해 하느님께서 육신을 취하신 베들레헴은 건너가는 장소입니다.
베들레헴에선 멈출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헤로데의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기 전
잠시 머물러 힘을 얻었던 침묵과 관상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상 속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그 구체적인 현존 안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베들레헴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의 소명을 강화하고,
우리가 올바른 길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결국 이 길은 우리를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분을 위해 계속 견고하게 항구히 이 길을 걷기위해서는
매일의 휴식 안에 기쁨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베들레헴 구유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매일 구유 앞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나마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 놓여있는 이 길은
‘주님의 탄생교회’의 작은 문처럼 들어서는 순간
밖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출산의 준비를 하는 성모님처럼
세상에 새 생명을 줄 준비가 되어있고,
자신을 모두 바쳐 삶에 전적으로 투신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든 이를 위한
특별히 미래와 희망이 없는 자들,
버려진 이들을 위한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출산 후의 마리아에게 힘을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에서의 관상적 휴식 안에서,
마리아는 그 자신 뿐 만 아니라 요셉과 그의 아들이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기도 안에서의 우리의 휴식은,
그리스도를 향한 구원의 길 위에서 다른 이들의
어려움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 묵상요점 : 베들레헴의 구유 앞에 고요히 머물며 우리 영혼의
힘과 위로를 얻는 휴식의 시간을 가집시다.
Fourth Day
The Life Of Humiliation Which Jesus Led From His Birth
Thought:
The Sign which the angel gave the shepherds to help them find the newborn Savior, points to His lowliness: "This shall be a sign to you: you will find an infant wrapped in swaddling clothes and lying in a manger." No other newborn baby who was wrapped in poor swaddling clothes and lying in a manger, a feeding trough for animals, could be found anywhere else but in a stable. Thus in lowliness the King of heaven, the Son of God, chose to be born, because He came to destroy the pride that had been the cause of man's ruin.
The prophets had already foretold that our Redeemer was to be treated as the vilest of men on earth and that He was to be overwhelmed with insults.
How much contempt had not Jesus indeed to suffer from men! He was called a drunkard, a trickster, a blasphemer and a heretic. What ignominies He endured in His Passion! His own disciples abandoned Him; one of them sold Him for thirty pieces of silver, and another denied having ever known Him. He was led in bonds through the streets like a criminal; He was scourged like a slave, ridiculed as a fool, crowned with thorns as a mock king, buffeted and spit upon, and finally left to die, hanging on a cross between two thieves, as the worst criminal in the world. "The noblest of all," says Saint Bernard, "is treated as the vilest of all." But the Saint adds, "The viler Thou are treated, the dearer Thou art to me." The more I see Thee, my Jesus, despised and put to shame, the more dear and worthy of my love dost Thou become to me.
Prayer:
O Dearest Savior, Thou hast embraced so many outrages for love of me, yet I have not been able to bear one word of insult without at once being filled with resentful thought, I who have so often deserved to be trodden under foot by the demons in hell! I am ashamed to appear before Thee, sinful and proud as I am. Yet do not drive me from Thy presence, O Lord, even though that is what I deserve. Thou hast said that Thou wilt not spurn a contrite and humbled heart. I am sorry for the offenses I have committed against Thee. Forgive me, O Jesus. I will not offend Thee again.
For love of me Thou hast borne so many injuries; for love of Thee I will bear all the injuries that are done to me. I love Thee, Jesus, who was despised for love of me. I love Thee above every other good. Give me the grace to love Thee always and to bear every insult for love of Thee.
O Mary, recommend me to Thy Son; pray to Jesus for m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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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12월 20일 : 여관 (루가 2,6-7)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말구유에 눕협다.”
- 보다 불편한 자리를 선택함
복음서는 여관이 가득 찼다거나 요셉과 마리아가 너무 가난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임신 중인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으로 가지 않은 것은 인간적인동기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의 해석은 인간이 하느님께 공간을 내어드리지 않은 것, 인간이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으로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주제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하느님이 여관으로 가길 원하지 않으셨다는 것. 즉 화려한 장소나 사적인 시중을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유롭고 의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하느님이 가난한 이들 가운데 당신의 자리를 선택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신 결정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보다 불편한 자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위해 하신 이 선택은, 만약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우리의 여관, 즉 개인적인 안락함을 포기하고 요셉과 마리아, 예수와 머물기를 원한다면 지금도 유용합니다.
고통이나 어려움에 처할 때에 선택의 기회는 언제나 두 가지 중에 있습니다. 그곳에 기꺼이 머무를 준비가 되어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하든 빨리 그 불편함으로부터 벗어 나기를 원하는지 우리 자신을 검증할 수 있는 적합한 기회입니다.
* 묵상요점 :나는 기꺼이 보다 불편한 자리를 선택할 용의가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안락함은 무엇입니까?
Fifth Day
The Life Of Sorrow Which Jesus Led From His Birth.
Thought:
Jesus Christ could have saved mankind without suffering and dying. Yet, in order to prove to us how much He loved us, He chose for Himself a life full of tribulations. Therefore the prophet Isaias called Him "a man of sorrows," His whole life was filled with suffering. His Passion began, not merely a few hours before His death, but from the the first moment of His birth. He was born in a stable where everything served to torment Him. His sense of sight was hurt by seeing nothing but the rough, black walls of the cave; His sense of smell was hurt by the stench of the dung from the beasts in the stable; His sense of touch was hurt by the prickling straw on which He lay. Shortly after His birth He was forced to flee into Egypt, where He spent several years of His childhood in poverty and misery. His boyhood and early manhood in Nazareth were passed in hard work and obscurity. And finally, in Jerusalem, He died on a cross, exhausted with pain and anguish.
Thus, then, was the life of Jesus but one unbroken series of sufferings, which were doubly painful because He had ever before His eyes all the sufferings He would have to endure till His death. Yet, since our Lord had voluntarily chosen to bear these tribulations for our sake, they did not afflict Him as much as did the sight of our sins, by which we have so ungratefully repaid Him for His love towards us. When the confessor of Saint Margaret of Cortona saw that she never seemed satisfied with all the tears she had already shed for her past sins, he said to her, "Margaret, stop crying and cease your lamenting, for God has surely forgiven you your offenses against Him." But she replied, "Father, how can I cease to weep, since I know that my sins kept my Lord Jesus in pain and suffering during all His life?"
Prayer:
O Jesus, my sweet Love! I too have kept Thee suffering through all Thy life. Tell me, then, what I must do in order to win Thy forgiveness. I am ready to do all Thou askest of me. I am sorry, O sovereign Good, for all the offenses I have committed against Thee. I love Thee more than myself, or a least I feel a great desire to love Thee. Since it is Thou who hast given me this desire, do Thou also give me the strength to love Thee exceedingly.
It is only right that I, who have offended Thee so much, should love Thee very much. Always remind me of the love Thou hast borne me, in order that my soul may ever burn with love of Thee and long to please Thee alone. O God of love, I, who was once a slave of hell, now give myself all to Thee.
Graciously accept me and bind me to Thee with the bonds of Thy love. My Jesus, from this day and forever in loving Thee will I live, and in loving Thee will I die.
O Mary, my Mother and my hope, help me to love Thy dear God and mine.
This is the only favor I ask of thee, and through thee I hope to receive i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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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날 12월 21일 : 목동들 - 깨어있음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루가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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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목동들의 모습은 겸손한 이들의 신뢰를 드러내며,
동시에 양떼와 하나 되어 어린양을 돌보며
인도하시는 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목동들은 늑대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고
그 누구도 잃지 않으며 어떤 악에도 유혹당하지 않도록
양떼들을 모으기 위해 늘 양떼들을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또한 어린양은 종교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양은 주로 성전에서 하느님께 받쳐지는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의 목동들은 특히 희생 제사를 위해 양을 지키라고 선택되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목동들의 양은 순수함으로 보존되었고
그들은 보다 높은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로 어린양은 거룩함의 기능이 있었습니다.
목동들은 겸손하고 낮은 이들에게 대한 복음의 수신자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첫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복음의 첫 선포자가 되었습니다.
선포자의 직무는 양떼 가까이에서 깨어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는 겸손하고 좌절한 이들, 소외된 사람들의 목자로 태어납니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입니다.
즉 다른 이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 양들을 하나하나 알고 계시고
그들 각자를 사랑스런 관심의 대상으로 바라보시는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목자이신 하느님은 오늘날도 죽음의 골짜기에서 헤메이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이끌기 위해 우리에게 은총과 힘을 주십니다.
<묵상요점>
* 내가 깨어있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지금 내 곁에 하느님께서 내게 목자로서 돌보라고 주신 이들은 누구입니까?
-"Verso Betlemme" : Luc Van Looy 주교님 / 수진루시아수녀 번역-
Sixth Day
God's Mercy Revealed In His Coming Down From Heaven To Save Us.
Thought:
Saint Paul says, "The goodness and kindness of God, our Savior, has appeared." When the Son of God made Man appear on earth, then was it seen how great is God's goodness towards us. Saint Bernard says that first God's power was manifested in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His wisdom in its conservation, but His merciful goodness was especially manifested later in His taking human nature on Himself, in order to save fallen mankind by His sufferings and death. For what greater proof of His kindness towards us could the Son of God show us than in taking on Himself the punishment we had deserved?
See Him as a weak, newborn infant, wrapped in swaddling clothes and lying in a manger. Unable to move or feed Himself, He has need of Mary to give Him a little milk to sustain His life.
Or see Him again in Pilate's courtyard, tied with fast bonds to a column and there scourged from head to foot. Behold Him on the way to Calvary, falling down from weakness under weight of the cross that He must carry.
Finally behold Him nailed to this tree of shame, on which He breathes His last amid pain and anguish. Because Jesus Christ wished that His love for us should win all the love of our hearts for Himself, He would not send an angel to redeem us, but chose to come Himself, to save us by His Passion and death. Had an angel been our redeemer, men would have had to divide their hearts in loving God as their Creator and an angel as their redeemer; but God, who desires men's whole hearts, as He was already their Creator, wished also to be their Redeemer.
Prayer:
O my Dear Redeemer! Where should I be now, if Thou hadst not borne with me so patiently, but hadst called me from life while I was in the state of sin? Since Thou hast waited for me till now, forgive me quickly, O my Jesus, before death finds me still guilty of so many offenses that I have committed against Thee. I am so sorry for having vilely despised Thee, my sovereign Good, that I could die of grief. But Thou canst not abandon a soul that seeks Thee.
If hitherto I have forsaken Thee, I now seek Thee and love Thee. Yes, my God, I love Thee above all else; I love Thee more than myself. Help me, Lord, to love Thee always during the rest of my life. Nothing else do I seek of Thee. But this I beg of Thee, this I hope to receive from Thee.
Mary, my hope, do thou pray for me. If thou prayest for me, I am sure of grac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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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일곱째 날 : 요셉 (마태 1,18-25: 2,13-15)
요셉은 율법에 의해 지배 받지 않고,
자기 양심의 법을 따르는 새로운 질서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정의의 새로운 법을 선포합니다.
마리아가 마니피캇 안에서 힘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듯,
요셉은 하느님 계획에 의한 인간 정의의 새로운 개념을 보여줍니다.
성 바오로에 의하면 의화는 더 이상 율법에 의하거나,
자기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부터가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수난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요셉은 판단과 심판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고
혼인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적인 자유로움을 주는 올바른 길을 선택합니다.
율법의 요구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가져오지만,
다른 이를 자비로 받아들이는 것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의미의 의화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위에 기초를 둡니다.
그것은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섬김을 받으러가 아니라, 섬기기 위한 사랑입니다.
심판은 인간을 인색하고 경직되게 하지만, 의로움의 길은
위로와 유익과 참된 선을 줍니다.
요셉은 정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는 이것을 위해 값을 치루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서, 보호자로서 역할을 택했고,
그의 올바른 지혜로움은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펼치신
놀라운 일의 신비를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이 없으며
비밀을 캐내려는 호기심에 빠져들려는 유혹에 현혹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사려깊고 책임감있는 아버지였습니다.
* 묵상요점 : 요셉의 의로움은 판단이나 심판에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기심을 포기하는 참다운 내적 자유로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삶 속에서 정의를 찾을 때, 자매에 대한 판단에 의한 것입니까?
아니면 구원과 섬김을 위한 것입니까?
Seventh Day
Flight Of The Child Jesus Into Egypt
Thought:
Although the Son of God came from heaven to save men, scarcely was He born when men began to persecute Him to death. Herod, fearing that this Child would deprive Him of his kingdom, seeks to destroy His life. But St. Joseph is warned by an angel in a dream to take the Infant and His Mother and flee into Egypt. Joseph obeys at once, and tells Mary about it.
He takes the few tools of his trade, that he may use them to gain a livelihood in Egypt for himself and his poor family. Mary wraps up a small bundle of clothes for the use of her little Son, and then, going to the crib, she says with tears in her eyes to her sleeping Child, "O my Son and my God! Thou hast come from heaven to save men; but hardly art Thou born when they seek to take Thy life." Lifting Him meanwhile in her arms and continuing to weep, she sets out that same night with Joseph on the road to Egypt.
Let us consider how much these holy wanderers must have suffered in making so long a journey, deprived of every comfort. The divine Child was not yet able to walk, and so Mary and Joseph had to take turns in carrying Him in their arms. During their journey through the desert towards Egypt they had to spend several nights in the open air, with the bare ground for their bed. The cold makes the Infant cry, and Mary and Joseph weep in pity for Him. And who would not weep at thus seeing the Son of God poor and persecuted, a fugitive on earth, that he might not be killed by His enemies!
Prayer:
Dear Infant Jesus, crying so bitterly! Well hast Thou reason to weep in seeing Thyself persecuted by men whom Thou lovest so much. I, too, O God, have once persecuted Thee by my sins. But Thou knowest that now I love Thee more than myself, and that nothing pains me more than the thought that I have so often spurned Thee, my sovereign Good.
Forgive me, O Jesus, and let me bear Thee with me in my heart n all the rest of the journey that I have still to make through life, so that together with Thee I may enter into eternity. So often have I driven Thee from my soul by my sins. But now I love Thee above all things, and I regret above other misfortunes that I have offended Thee. I wish to leave Thee no more, my beloved Lord. But do Thou give me the strength to resist temptations.
Never permit me to be separated from Thee again. Let me rather die than ever again lose Thy good grace.
O Mary, my hope, make me always live in God's love and then die in loving Him.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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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여덟째 날 : 마리아 (루가 1,26-38)
성탄의 신비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신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리아의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1) 하느님의 협력자
마리아는 변경할 수 없는 “예”를 선포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협력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2)동정녀
마리아는 자기 자신을 위해 뭔가를 찾는 것이 없는, 자유로움의 소명에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합니다. 이것은 마리아께서 주님의 종으로서의 온전한 자기인식을 가지고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3) 어머니
어머니이셨기에 항상 아들의 곁에, 결국 십자가의 아들 가까이 머무셨습니다. 또한 아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시기에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4) 여인
남성중심의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여자인 마리아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모 영보 안에서 남자는 제외되었습니다. 즈가리야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반면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이 소식을 즉시 전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예수 부활 후 살아계신 예수님의 첫 증언 또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의 힘으로 이 아기가 잉태된 것이 아니라, “당신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씀하신 여인의 순명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5) 요셉의 부인
마리아는 완전한 일상의 삶속에서 사셨고 그 당시의 가장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사셨습니다.
* 묵상요점 : 마리아의 모습 중 묵상하고 싶은 모습 하나를 깊이있게 바라봅시다.
Eighth Day
The Life Of The Child Jesus In Egypt And In Nazareth
Thought:
Our Blessed Redeemer spent the first part of His childhood in Egypt, leading there for several years a life of poverty and humiliation. In that land Joseph and Mary were foreigners and strangers, having there neither relatives nor friends. Only with difficulty could they earn their daily bread by the labor of their hands. Their home was poor, their bed was poor, their food was poor. Here Mary weaned Jesus; dipping a piece of bread in water, she would put it in the sacred mouth of her Son. Here she made His first little garments and clothed Him with them. Here the Child Jesus took His first steps, stumbling and falling as other children first do. Here too He spoke His first words, but stammeringly. O wonder of wonders! To what has not God lowered Himself for love of us! A God stumbling and falling as He walks! A God stammering in His speech!
Not unlike this was the poor and humble life that Jesus led in Nazareth after His return from Egypt. There, until He was thirty years old, He lived as a simple servant or workman in a carpenter shop, taking orders form Joseph and Mary. "And He was subject to them." Jesus went to fetch the water; He opened and closed the shop; He swept the house, gathered the fragments of wood for the fire, and toiled all day long, helping Joseph in his work. Yet who is this? God Himself, serving as a apprentice! The omnipotent God, who with less than a flick of His finger created the whole universe, here sweating at the task of planing a piece of work! Should not the mere thought of this move us to love Him?
Prayer:
O Jesus, my Savior! When I consider how, for love of me, Thou didst spend thirty years of Thy life hidden and unknown in a poor workshop, how can I desire the pleasures and honors and riches of the world? Gladly do I renounce all these things, since I wish to be Thy companion on this earth, poor as Thou wast, mortified and humble as Thou wast, so that I may hope to be able one day to enjoy Thy companionship in heaven. What are all the treasures and kingdoms of this world? Thou, O Jesus, art my only treasure, my only Good!
I keenly regret the many times in the past when I spurned Thy friendship in order to satisfy my foolish whims. I am sorry for them with all my heart. For the future I would rather lose my life a thousand times than lose Thy grace by sin. I wish never to offend Thee again, but always to love Thee. Help me to remain faithful to Thee until death.
O Mary, thou art the refuge of sinners, thou art my hop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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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아홉째 날
+ Immanuel!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어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주님!
어찌하여 하느님이
작고 작은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지 ...
다소곳이 앉아 성탄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당신의 순수 앞에서 저의 불순함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맑음 앞에서 저의 혼란스러움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고요 앞에서 저의 부산함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겸손 앞에서 저의 잘남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사랑 앞에서 저의 미움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신뢰 앞에서 저의 불안함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의탁 앞에서 저의 자만심이 무너집니다.
임마누엘 주님!
당신 앞에서 무너짐은 절망이 아니라 새롭게 일어나는 희망입니다.
당신 앞에서 온전히 무너지길 소망하오니
당신 곁에서 저도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하소서.
가장 작은 모습으로 오시어 세상을 흔들어 놓으신 당신의 사랑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PS: 본 9일기도에서의 한글 묵상은 올리브님이 마리아사랑넷의 박은경 아네스 수녀님 방에 올린 글에서 따옴.
Ninth Day
The Birth Of Jesus In The Stable Of Bethlehem.
Thought:
When the edict was issued by the emperor of Rome that everyone should go to his own city to be enrolled, Joseph and Mary went to be enrolled in Bethlehem. How much the Holy Virgin must have suffered on this journey of four days, over mountainous road and in the wintertime, with its cold rain and wind! When they arrived in Bethlehem, the time of Mary's delivery was near. Joseph, therefore, sought some lodging where she might give birth to her Child. But because they were so poor, they were driven away from the houses and even from the public inn, where other poor people had found shelter.
So in that night they went a short way out of the town and there found a cave that was used as a stable, and here Mary entered. But Joseph said to his virgin wife, "Mary, how can you spend the night in this cold, damp cave and here give birth to your Child?" Mary however replied, "Dear Joseph, this cave is the royal palace in which the King of kings, the Son of God, wishes to be born."
When the hour of her delivery had arrived, the holy Virgin, as she knelt in prayer, all at once saw the cave illumined with a dazzling light. She lowered her eyes to the ground and there saw before her the Son of God now born on earth, a poor little Babe, crying and shivering in the cold.
Adoring Him as her God, she took Him to her breast and fondled Him.
Then she wrapped Him in swaddling clothes and lad Him on the straw of the manger that stood in the cave. Thus did the Son of God choose to be born among us to prove His infinite love for us.
Prayer:
O Adorable Infant Jesus! I should not have the boldness to cast myself at Thy feet, if I did not know that Thou Thyself invitest me to draw near Thee.
It is I who by my sins have made Thee shed so many tears in the stable of Bethlehem. But since Thou hast come on earth to pardon repentant sinners, forgive me also, now that I am heartily sorry for having spurned Thee, my Savior and my God, who art so good and who hast loved me so much.
In this night, in which Thou bestowest great graces on so many souls, grant Thy heavenly consolation to this poor soul of mine also. All that I ask of Thee is the grace to love Thee always, from this day forward, with all my heart. Set me all on fire with Thy holy love. I love Thee, O my God, who hast become a Babe for love of me. Never let me cease from loving Thee ever more.
O Mary, Mother of Jesus and my Mother, thou canst obtain everything from thy Son by thy prayers. This is the only favor I ask of Thee.
Do thou pray to Jesus for me. Amen.
PS. 성탄9일기도문의 pdf 파일:
- Christmas Novena - 2015 -.pdf (494959)
거룩한 성탄의 은총과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기원드립니다.
May the grace, love and peace of Holy Christmas be with you all for ever!